〈시각〉의 독자들에게 ‘DDBBMM’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DDBBMM은 이윤호, 김강인이 운영하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2013년부터 ‘김가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오다가, 올해 여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어요.
김가든 스튜디오에서 DDBBMM 스튜디오로 이름이 변경된지 어느덧 4개월차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 이름 변경 당시 자체콘텐츠를 지향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현재 DDBBMM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요?
윤호 우선 저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고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많이 정리가 된 상태에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못하고 있지만, 스스로 하고싶은 작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원이 되는 걸 느낍니다.
강인 저희가 생각해온 것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우선 클라이언트와 하는 일을 줄여서 시간을 확보해야 해요. 하지만 스튜디오 운영 기간이 늘어날수록 좋은 클라이언트, 매력적인 의뢰가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라서, 포기해야하는 부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올해는 어느 선까지 포기할 것인가에 대해 특히 많이 고민한 해였습니다.
일반적인 스튜디오와는 달리 두분은 부부라는 점에서 오는 특별한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부부 스튜디오만의 특징, 그리고 어려웠던 점 혹은 좋았던 기억 등 관련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호 가령 친한 친구와 같이 스튜디오를 운영한다해도 수익배분이라든가 휴가사용이라든가 좀 민감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부부가 같이 일을 하면 그런면에서는 좀 더 편한 것 같아요. 또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의견도 많이 주고 받는데, 처음엔 너무 솔직해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작업에 대해 진솔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인 저도 동의해요. 가족 회사만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근데 부부도 부부 나름이니까 팀마다 가진 장단점이 조금씩 다를 거예요. ‘부부 스튜디오는 전부 어떻다’라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코로나 시국으로 도시가 시끌벅적한 요즘, 그 어느때보다 두분이 가평에서 가드닝을 하셨던 시절이 많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의 전원생활 경험이 김가든 스튜디오부터 DDBBMM까지의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합니다.
윤호 저는 가평에 살았던 시기가 저희 스튜디오의 근원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때의 감성이 담긴 작업들과 자체 프로젝트로 진행한 ‘가드너스마켓'에서 이어진 일들이 많았습니다. 식물에 관심이 많아져서 가드닝 수업도 들었었는데, 선생님이 식물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다섯가지가 ‘땅, 불, 바람, 물, 마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저희 둘 다 좋아했는데 결국 지금 스튜디오의 이름이 되었네요. 각 단어의 초성을 따온 것이 DD(땅)B(불)B(바람)M(물)M(마음)입니다.
강인 저는 사실 가드닝보다 텃밭 일을 더 좋아했어요. 옥수수나 수박, 오이, 고구마처럼 원래는 마트에서 사먹었던 것들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경험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하고싶은 이야기도 많아지고, 만들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가드너스마켓을 연 것도, 그 마켓에 가져가기 위해 자체 상품들을 만든 것도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전원생활을 했다고해서 작업 방식 자체가 크게 달랐던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남들과 공유하고 싶을 만한 생활을 했다는 점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었네요.
디자인 업무 특성 상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를 잡는 것은 모든 디자이너의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부부 스튜디오의 형식을 띄는 DDBBMM의 경우, 더욱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최근에 워라밸을 위해 하셨던 노력이 있을까요?
강인 저는 워라밸 잘 못 챙기고 있어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강의도 하고 일도 하다보니 균형을 못 잡겠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상황인 분들 중에서 균형잡인 생활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히려 제가 그분께 여쭤보고 싶네요.
윤호 워라밸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언제쯤 그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작업 중엔 채팅이나 유튜브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주말엔 하루라도 온전히 쉬면서 전시를 보거나 탁트인 교외로 나가서 머리와 마음이 환기되도록 하고 있어요.
DDBBMM의 자체 프로젝트 중 〈R.I.P. Emoticons〉 프로젝트를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이전 프로젝트, 〈도톤보리여, 울게 해다오!〉 작업에서도 이모티콘을 사용하신 점이 기억에 남았는데〈R.I.P. Emoticons〉 프로젝트에서는 이모티콘과 ‘추모’라는 다소 안어울릴 수 있는 부분을 엮으신 걸 보고 DDBBMM만의 위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모티콘과 추모를 엮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인 원래 이모티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도톤보리여, 울게 해다오!>는, 아이돌 그룹의 연습, 데뷔, 공연 준비 과정이 굉장히 고된 것인데도 늘상 가볍게 소비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이모티콘을 사용해 만든 포스터였어요. 무려 “도톤보리여, 울게 해다오!”라고 말하는데도 가볍게 ‘피식’할 수 있으려면 이모티콘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여러 문자를 타이핑해 그림을 만드는 ‘이모티콘'은 한 번만 누르면 그림이 나오는 ‘이모지'로 세대교체됐잖아요?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대부분 편리한 이모지를 사용하니까요. 앞으로 점점 이모티콘을 보기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든 아카이브 책이 <이모티콘 추모비>입니다. 단순히 많은 이모티콘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모티콘이 이모지에 의해 사라진다’는 맥락까지 보여주고 싶어서 추모비라는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TAKE ME HOME〉 작업 관련해서 It’s Nice That에 실린 기사를 읽었어요. 전시 및 판매 플랫폼들을 소개하고 그 현상을 다루어보고자 기획된〈TAKE ME HOME〉에서 관람자가 직접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과 시각 작업의 완성도만으로도 좋게 봤었는데, 작업의 메인 모티브가 작품이 팔렸을 때 빨간 스티커를 붙이는 미국 갤러리 전통에서 착안하셨던 것을 알고나서 한번 더 놀랐습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미국 갤러리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업하실 때 영감을 주로 어디서 받는지 알고 싶습니다.
강인 It’s Nice That과 인터뷰할 때 그게 미국 갤러리 전통이란 말을 하진 않았는데, 취재하신 분이 스스로 해석을 섞어 넣어주셨네요. 갤러리에서 판매되는 작품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는 건 한국에서도 쓰는 방식이라서 생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윤호 미술관에서 보는 빨간 스티커는 왠지 권위적으로 느껴졌는데, 오히려 그런 스티커를 관람객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재밌는 요소로 활용하는 게 전시의 성격과도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캘린더 모양자 작업, 〈Take Me Home〉작업에서의 아크릴 윷놀이판 등 실물 제품 제작에 있어서도 굉장한 열정과 노력이 느껴졌어요. 매 프로젝트마다 해당 작업과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는 실물 제품을 제작하시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실물 제품 기획 및 제작 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호 인쇄기반의 작업이 아닌, 물성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 때는 그것을 사용할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패키지를 뜯는 순간부터 물건에서 느껴지는 촉감, 냄새, 사용할 때 일으킬 감정 등을 계속 상상하고 예측해봅니다. 무엇보다 ‘내가 갖고 싶고, 사고 싶은 물건’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하다보면 만드는 과정이 좀 더 재밌어져요.
시각예술분야 종사자분들 대부분 어딘가 마음 한편에 본인만의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을 꿈꾸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호님과 강인님은 그러한 꿈을 이루신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강인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 자체가 목표라면 정말 이루기 쉬운 꿈일 거라고 생각해요. 비싼 장비나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디자인 스튜디오는 디자이너가 일하는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떤 종류의, 어느 정도 규모의 일을 하는 스튜디오인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둘지 먼저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고려하다보면 꼭 스튜디오의 형태로 일하진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요.
윤호 겉으로 보기엔 다 비슷해보일지 몰라도, 스튜디오들마다의 성격과 방향성이 있잖아요. 그런 중심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시작한다면 트렌드나 평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묵묵히 제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튜디오들의 실력이 계속 상향 평준화 될 것을 예상했을 때, 다른 스튜디오보다 잘한다고 내세울 수 있는 특장점 하나 정도는 있어야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DDBBMM의 시각으로 정의해 본다면?
강인 스튜디오의 이름을 걸고 디자인을 정의하기엔 이른 것 같아요. 다만 제 개인의 생각으로는, ‘뭔가를 있어야할 자리에 있도록 해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윤호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디자인의 범위는 너무 넓어서 정의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단어로 규정하는 순간 생각이 그 안에 갇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DDBBMM 스튜디오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고 싶은지,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일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만의 작은 브랜드를 만들려는 계획이 있어요. 기존의 상품들이 단순히 판매, 유통되는 구조와는 다르게 접근을 하려고 해요.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고, 소량생산 되는 공예적 성격이 강하지만 가치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싶습니다.